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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글/대메이저 후윹

mell님 / 동거를 일년이나 했는데 애인은 아직도 고딩 ! ?




돌려돌려돌림판 후윹 리퀘글

동거를 일년이나 했는데 애인은 아직도 고딩!?




mell










학교는 보통 4시쯤 끝이 났고, 그 후의 축구부 연습을 마치면 밤 10시 정도가 됐다. 친구들이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갈 즈음이면 유토도 축구화가 든 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간다. 학교 앞 건널목에서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고 혼자 왼쪽 골목을 향해 돌아서고 나면 5분도 지나지 않아 유토가 사는 집이 나왔다. 그것은 작년 말부터 사귀고 있는 다섯 살 연상의 회택과 함께 사는 집이다. 회택이 다니는 대학교와 유토가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의 가운데 지점으로 집을 잡는대서 그러려니 하고 기다렸는데, 막상 회택이 손을 잡고 데려간 곳은 유토네 학교에서 겨우 오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작은 빌라다. 그는 당황하는 유토에게 열쇠를 쥐여주며 평일에도 주말에도 운동을 하느라 학교에 일찍 가서 늦게 오는 사람에게 맞추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 말대로 대학 진학을 운동 특기생으로 노리고 있어 평일이고 주말이고 가리지 않는 빡빡한 스케줄이 존재했지만, 그래서 회택의 배려가 고마운 건 사실이지만, 정작 신경을 좀 써줬으면 하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라고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목소리는, 비슷한 소음으로 열린 현관문 소리에 완전히 묻힌다. 유토는 환하게 켜진 거실 구석에 가방을 내려놓고, 문 밑으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회택의 작업실을 힐끗 쳐다본 후에야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보통은 아무리 바빠도 유토의 하교시간에 맞춰 거실에서 기다리다가 잘 왔냐고 인사라도 하고 돌아가는 법인데, 요즘의 회택은 세상에서 제일 바쁘다는 고3보다 더 바빠 그 얼굴을 보기가 영 힘든 거다. 오늘처럼 작업실에 틀어박혀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엉망이 된 수면시간 덕분에 쿨쿨 잘도 자고 있거나. 그마저도 아니라면 외출 중이다. 그래서 유토는 언제나 가장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회택은 근처 대학의 졸업반이었다. 참여하고 있는 동아리마저도 그의 전공인 음악과 너무 가까워서 졸업을 코앞에 두고도 버리지 못하고 영원히 끌고 가야 하는 과제마냥 뻔질나게 학교를 드나드는 것이다. 특히 시험기간이라도 다가오면 그거 준비하랴, 과제 준비하랴, 동아리 작품 준비하랴. 몸을 세 개로 나눠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는 스케줄이었으나 그는 그것들을 기어이 꾸역꾸역 해내고 말았다. 덕분에 동거인인 연하 애인이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집과 학교를 오가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모든 걸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어쨌든, 회택은 문득 고갤 들어 이미 늦은 밤이 되어버린 시계를 확인하고 일어나 반쯤 열린 유토의 방문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얌전히 이불을 덮고 잠든 얼굴 위로 피로가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그는 그것이 단순한 피로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주말만큼은 어떻게든 아침 9시 정각에 일어나 유토와 함께 밥을 먹고 데이트라도 나갔다 오려고 했는데. 눈을 뜨니 시계는 일요일 낮 12를 가리키고 있고, 온 방에 널어놓은 알람시계는 울리다가 지쳐 끊어졌거나, 지금까지도 열심히 귀를 공격하는 중이다. 아이씨... 짜증과 자괴감이 함께 몰려와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고 일어났지만 이미 유토는 집을 떠나고 없다. 주말 연습에 참여하러 가버린 거다. 괜히 혀만 차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데, 식탁 위에 언제나처럼 놓고 가는 쪽지가 있다.


'저 다녀올게요 6시에 끝나요'


회택은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고, 곧 종이를 잠옷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즉시 휴대폰을 들어 유토에게 전화를 걸곤 연습이 끝난 뒤에 둘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잔 약속도 잡아놓는다. 모처럼 들뜬 대답이 전화를 타고 흘러나왔다. 저 지난 번에 형이랑 갔던 초밥집 가고 싶어요! 초밥 좋지~ 회택은 그제야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전화를 끊고,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어제 못다한 과제를 떠올리며 작업실에 틀어박힌다. 그러다가 5시 즈음 시계를 한 번 보고, 고작 두어 시간밖에 잠들지 못했던 자신의 수면시간도 떠올리고, 그는 담요를 들고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잠깐 눈을 붙였다. 굳이 불편한 잠을 택하는 이유는 깊게 잠들까봐, 그리고 깨어나지 못하더라도 유토가 돌아오면 깨워줄 테니까.

물론 그것은 회택의 착각이다. 푹 잠든 남자가 소파 밖으로 덜렁거리는 다리를 움찔 떨고 몸을 벌떡 일으켰지만, 집은 이미 완벽한 어둠이 내려앉은 후다. 설마 아직도 유토가 안 왔나!? 싶어 화들짝 놀랐다가 어느새 사라진 담요와 어느새 나타난 얇은 이불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아 진짜.... 그는 이번에야말로 착한 동거인이자 애인의 마음씨에 조금 절망하며 부스스 일어나 작업실에 굴러다니는 종이 한 장을 주워들고, 그 위에 매직으로 '깨워주세요'를 큼지막하게 쓴다. 그 다음엔 그걸 자신의 가슴팍에 붙이고, 곧 다가올 월요일을 떠올리며 상심한 얼굴로 곡 작업을 하다가 늦은 새벽 피로와 졸음이 몰려올 즈음 살금살금 유토의 방에 들어가 곤히 잠든 남자의 침대 바로 밑에 멋대로 드러누웠다.

형, 형. 이미 등교할 준비를 마친 유토가 딱 두 번을 부르자마자 눈을 번쩍 뜬 회택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마 지금 깨어나지 못했더라면 유토는 그대로 일어나 이불을 덮어주고 살금살금 방을 벗어났을 테다. 난리가 난 머리, 바닥에서 불편하게 자는 바람에 통증을 호소하는 온몸, 볼을 가로지르는 침자국까지. 엉망이 된 얼굴은 유토의 얼굴을 보자마자 안심하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유토의 손가락이 회택의 가슴팍에 붙은 종이를 쿡 찌른다.



"형."
"어... 잘 잤어? 이미 준비 다 했네?"
"왜 여기에서 잤어요."
"왜긴 왜야. 우리 얼굴 너무 못 보니까 그랬지."


얼굴 까먹겠다 야. 회택이 허탈하게 웃으며 유토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몸을 돌려 나가려나 싶더니 갑자기 휙 돌아서서 가만히 선 유토를 끌어안고 등도 몇 번 통통 두드린다. 그리곤 후다닥 나가 어제 새벽에 사온 식사거리를 냉장고에서 잔뜩 꺼내든다.


"밥 먹고 가야지."


회택이 웃으며 식탁 의자를 잡아당겼다. 어차피 아침 연습 후에 식사를 하겠지만, 유토는 굳이 그런 이야길 꺼내지 않으며 회택의 맞은편에 앉아 가장 작은 주먹밥 하나를 집어들었다. 톡톡 비닐을 뜯고 있으니 그걸 웃는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회택과 눈이 마주친다.


"형은 안 먹어요?"
"응? 같이 먹을까?"


하하 웃고 있는 얼굴이지만, 아마 제멋대로인 수면패턴 덕분에 속이 더부룩하다 못해 토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 상태다. 유토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갤 저었다. 참치가 든 주먹밥 하나를 깔끔하게 해치우고, 양치를 하고 있으니 어느새 또 따라온 회택이 자신의 칫솔도 들고 치카치카 소릴 내며 거울 속의 유토를 바라본다. 노란색과 분홍색의 칫솔 두 개가 분주히 흔들렸다. 이런 아침이 얼마만이더라? 멍하니 생각하던 회택이 거품을 퉤 내뱉고, 유토가 나오기도 전에 후다닥 달려가 가벼운 옷을 주워입고 나온다. 마침 현관 앞에 서서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려던 얼굴이 입을 꾹 다물고 두 눈을 깜빡거린다.


"학교 같이 갈까?"
"...안 그래두 되는데."
"에이, 같이 가자아."


그는 웃는 얼굴로 운동화를 구겨 신곤 유토의 등을 떠민다. 등에 매달린 가벼운 가방이 둥실둥실 흔들렸다. 이렇게 함께 나서는 길이 얼마만이더라? 회택은 오늘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얼마만이더라?'를 붙이다가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유토를 가만히 쳐다본다. 안 그래도 미안한 감정밖에 안 남은 상탠데, 즐거운 얼굴을 보니 제곱의 미안함이 두 어깨를 무시무시하게 짓누르는 거다. 할 말이라도 있는 건지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앞을 보다가, 바닥을 보다가, 회택도 힐끔 쳐다보던 유토는 결국 머쓱한 얼굴로 용건을 꺼내들었다.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형, 저 곧 시합 있는데..."
"시합!? 언제!?"
"근데 안 와도 괜찮아요."


그냥 알려주는 거예요. 유토가 웃는 얼굴로 고갤 숙인다. 아... 유토야... 회택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목을 잡아당겼다. 내가 나쁜 놈이다, 나쁜 놈이야.


"당연히 가야지. 언젠데?"
"...다음 주 토요일이요. 1시에."
"토요일 1시? 알겠어!"


필사적으로 스케줄을 떠올리던 회택이 날짜와 시간을 따라 말하며 고갤 끄덕이자 유토의 얼굴이 조금 더 밝아진다. 다음 주 토요일 한 시, 뭐 없었지? 맞아 없었어. 불안한 얼굴이 딱 네 걸음을 걷기도 전에, 완전히 잊고 있던 일정 하나를 기어이 떠올려내고 만다. 아... 뒤늦게 아차한 남자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유토의 표정을 살피지만, 요즘 들어 가장 즐거워 하는 얼굴을 보니 차마 못 간단 이야길 꺼낼 수가 없다. 그날 낮에 공연 있는데... 리허설도 해야 하고... 애당초 공연장이 엄청나게 먼데... 회택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으니 유토가 고갤 숙이며 눈을 마주본다.


"왜 그래요?"
"......"


당연히 가겠다고 약속한지 일 분도 안 지나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안 된다고 어떻게 말해. 그러나 이미 유토는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형 그날 할 일 있어요?' 그런다. 회택은 민망한 얼굴로 천천히 고갤 끄덕이고, 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야... 미안해.... 형이 그날 일 있는 걸 깜빡해서."


미아안... 괜히 애교섞인 목소리로 사과하며 슬그머니 바라보지만 유토는 그저 담담한 얼굴로 알겠다고 고갤 끄덕일 뿐이었다. 바닥을 향해 점점 내려가는 시선은 어떻게 보아도 서운한 사람의 눈빛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있었던 스케줄을 없애버릴 수는 없는 거다. 회택은 교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고, 유토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아닌데... 아...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갤 푹 숙여보지만 해결할 방도도, 기분이 나아질 구석도 없다. 이젠 미안함 정도가 아니었다. 무거운 죄책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



그날은 온종일 유토의 기분이 우울의 바다를 헤엄치는 중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는지. 연습이 끝나자마자 감독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요즘 니들 좀 지쳐 보인단 이유로 저녁 회식을 제안했다. 모두가 기뻐한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메뉴가 초밥집이란다. 그 잘 먹는 남자애들을 데리고 일식집에 가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근처 번화가에 있으며 저렴하고, 고로 어린애들이 드글드글한 초밥뷔페. 가장 안쪽에 자릴 잡은 유토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고갤 숙이고 음료수만 몇 번 마시다가 그마저도 긴 한숨을 내쉬며 내려놓았다. 하필 메뉴가 초밥이어서. 안 그래도 회택 때문에 서운한 마음만 가득가득한데, 식사 메뉴마저 얼마 전 회택이 약속을 해놓고 자버리는 바람에 자동으로 펑크가 나버린 그거라고. 물론 깨웠으면 좋았을 거다. 회택도 그러길 바라고 있었을 거고. 그래도 형 요즘 피곤하니까... 그래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괜히 음료수를 한 모금 더 마시는데 옆에 앉은 친구 형구가 놀라선 '야 너 울어!?'하곤 호들갑을 떤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울지 않는다고(정말로 울지 않았으니까) 고갤 저어도 어쩐지 그는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강제로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나와 다 같이 가는 노래방에도 가야했고 인형뽑기도 해야했고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늦은 밤에야 집에 도착했다. 회택은 거실 소파에 앉아 유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이 열리자마자 초조한 얼굴이 고갤 번쩍 들고 쪼르르 달려나가 가방을 잡아당긴다.


"유토 왔어!?"


당연히 자고 있거나 작업실에 처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당황한 유토가 시선을 돌리며 고갤 끄덕였다.


"오늘 일찍 끝난다고 들었는데 안 와가지구 걱정했잖아."
"....아."
"형이 아침에 너무 미안해서... 기다렸어."
"괜찮은데.."


고작 그런 걸로 마음이 풀어져버려선, 그제야 고갤 숙인 유토가 작은 목소리로 '죄송해요' 사과했다. 회택은 다음 날에도 일찍 일어나 유토와 함께 아침을 먹었고,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하교 시간에 맞춰 거실에 앉아 유토를 기다렸다. 가끔은 교문까지 마중나와 늦은 밤의 산책을 하기도 했고.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어떠한 위기감이라도 느끼게 된 건지. 안 자고 버티든, 일어나든, 어떻게든 깨어있는 상태로 최소 하루에 두 번은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아둥바둥 발악을 하는 거다. 유토는 아무리 봐도 무리를 하는 게 분명한 회택을 볼 때마다 걱정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사실 그것은 조금 기쁜 일이기도 했다. 그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일상의 일부분을 끌어내 굳이 할애하고 있었으니까. 아침 등굣길부터 기분이 좋아서 회택에게 오늘의 일정이라거나, 주말의 일정 따위를 얘기하며 큰 보폭으로 골목을 따라 걷다가 뒤를 돌았더니 마찬가지로 기분 좋은 얼굴의 회택이 손을 내밀었다.


"골목 끝날 때까지 손 잡을까~?"


마음이 일렁일렁 움직였다. 유토가 그 손을 잡고 이 골목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다가 문득 다시 뒤를 돌아보니 고갤 갸웃 움직인 회택이 '왜?' 그런다. 유토는 서서히 멈춰서서 주변을 한 번 살피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자 한걸음 다가가 얼굴을 내밀었지만, 입술이 회택의 뺨에 닿기도 전에 손이 먼저 다가와 얼굴을 톡 밀어낸다.


"어허... 학교 앞에서..."


그렇게 밀려나도 그저 기분이 좋은 얼굴은 가로막은 손에 입술을 한 번 부볐다가 그대로 뒤를 돌아 손을 꽉 쥐고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따 집에 돌아가면 문을 열자마자 뛰어 들어가서 꽉 끌어안을 거야. 그 다음엔 키스를 하고 이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할 거야. 학교에 가서도 오늘 따라 기분이 좋아 보인단 말을 열 번을 넘게 듣고, 해가 지자마자 저녁 연습을 스킵하고 그 기분 그대로 붕 떠서 집까지 단숨에 달려왔다. 회택은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유토를 보며 잠깐 놀랐다가, 신발을 벗자마자 그대로 뛰어 안기는 높은 텐션에 두 번 놀랐다가, 제 볼에 콕 와닿는 입술에 세 번이나 놀라고 만다.



"뭐야, 오늘 기분 되게 좋네. 학교에서 무슨 좋은 일 있었어?"



회택이 물었지만 그저 고갤 저을 뿐이다. 진짜 이상하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허허 웃던 얼굴은 결국 대답 듣길 포기하고 등을 팡팡 두드렸다. 유토는 물끄러미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갤 숙여 입술을 갖다댄다. 가볍게 닿은 입이 떨어지고, 요즘 들어 유난히 홀쭉해진 볼에 닿았다가 귀 밑으로 다가가자 이번에도 회택의 손이 유토의 얼굴을 감싸며 천천히 밀어낸다. 아쉬운 얼굴은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지만 돌아오는 건 그저 웃음뿐이다.


"빨리 밥 먹어야지. 형 배고프다."
"...오늘도 바빠요?"
"조금."


모처럼 일찍 들어왔는데. 시무룩해지기도 전에 슬리퍼를 끌고 주방 쪽으로 가던 회택이 고갤 돌린다.


"들어와서 앉아있어도 돼."
"방해되잖아요."
"안 그래."
"그래도..."
"유토는 괜찮아."



옆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도 아닌데. 그치? 고작 그런 말로 금세 회복한 기분은 회택이 냉장고 문을 열기도 전에 쪼르르 달려가 허리를 꽉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형 진짜 좋아. 어떡하지. 그리곤 또 목 근처를 쪽쪽거리다가 품에서 벗어난 회택에게 얼굴을 콱 잡히고 만다.


"안 돼. 밥 먹자고 했잖아."
"치..."


입술을 삐죽거리며 눈동자를 다른 데로 휙 돌려도, 얼굴에 대놓고 '나 삐 져 따'를 붙여놔도, 그저 웃는 남자는 유토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식탁 앞에 앉힌 후에야 다시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거나 발굴해내는 거다. 유토의 불안지점에 다시 희미한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 날부터였는지, 아니면 이미 그 전에도 그러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회택은 온 힘을 다해 유토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는 모양인지 '안 돼'라는 말과 함께, 얼굴을 잡는다거나 손을 막는다거나 하는 명확한 제스쳐로. 가끔 두 사람의 시간이 맞는 날 저녁을 먹고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던 중 팔을 끌어안고 어깨에 머리를 대면 그때부터 경직된 몸은 키스라도 하고 나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음료수 같은 걸 가져오며 분위기를 깨버리는 거다.


**


나 쫌 우울한 것 같아. 책상에 엎드린 유토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회택과 사귄지 벌써 반 년 가까이 지나가고 있는데. 그동안 키스밖에 해본 적이 없으며 그마저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그 횟수가 적었다. 졸업반이라고 바빠서 그렇게 된 건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런 일정과는 상관없는 회택의 거절신호다. 슬쩍 치대기라도 하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취급이나 하고, 닿은 입술이 얼굴 밖으로 벗어난다 싶으면 가차없이 손으로 잡고 떼어내버리고. 보통 사귀고 몇 달 정도 지나면 다들 자연스럽게 하지 않나... 아니면 내가 너무 보채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만 애당초 답이 나올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눈을 꾹 감고 팔에 얼굴을 묻는다.


"유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팔을 콕콕 찍은 형구가 고갤 기울여 얼굴을 쳐다봤다. 잠깐 고민하던 유토가 스윽 일어나 고갤 도리도리 저었지만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친구는 팔과 함께 옆구리 같은 곳도 콕콕 찌르며 헤헤 웃음을 터뜨린다.


"뭔데. 오늘 계속 엎드려 있었잖아. 어디 아파?"
"아픈 건 아니야."
"아픈 건 아니면, 다른 거 뭔데."


책상 위에 팔을 포개고 앉은 형구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긴 했지만 이건 분명 말을 꺼낼 때까지 죽어라 집착하고 매달릴 얼굴이다. 그대로 일어나 다른 곳으로 도망이라도 칠까 고민하던 유토는 축구부 중에서도 제법 빠른 편인 형구의 기록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구 너 여자친구 있어?"
"없는데? 왜? 좋아하는 애 생겼어!?"



안 그래도 웃고 있던 얼굴이 환하게 타오르며 다시 손가락을 들고 팔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 누군데 누군데. 알려줘 알려줘. 누군데 그렇게 앓고 있었던 거야. 헛다리를 짚은 남자애의 완전 신난 얼굴에선 이미 꺄르르 웃음이라도 터져나올 기세다. 이래선 도움을 받을 수가 없잖아... 잠시 망설이던 유토가 주변을 살피곤 형구의 귓가에 손을 가져갔다. 당연히 같은 반 친구의 이름이라도 나오겠거니 싶은 남자애는 귀를 그쪽으로 가져가며 유토와 제법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을 떠올린다. 후설이? 신자? 그리고 세 번째의 이름을 떠올리기도 전에 청천벽력 같은 속삭임이.


"나 애인 있어."
"엥?"


입을 쩍 벌린 형구가 두 눈을 깜빡이며 유토를 바라봤다. 에인이 있다고? 뭔 소리야.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여태까지 말을 안 했다고? 설마 어제 생긴 거!? 방금 전까진 분명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었는데, 이젠 그게 사람도 죽일 안광이 됐다. 당황한 유토가 미, 미안 사과하며 시선을 피한다.


"언제부터 사귄 건데?"
"...작년."
"......"


와 진짜 너무한다. 순식간에 싸늘해진 얼굴이 유토를 노려보다가 다시 옆구리를 푹 찌른다. 아까보다 조금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저 기분탓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데. 누군데 그렇게 숨겼어."
"숨긴 거 아니야."


애당초 말할 기회도 없었는데. 형구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던 유토가 다시 한 번 귀에 손을 가져가고, 조용히 말했다. 같이 사는 형인데...


"엥!?!?"


다시 한 번 놀한 형구가 입을 쩍 벌리고, 두 눈을 크게 뜬다. 대박사건. 그래서 숨겼구만? 상상도 못해본 사실이 술술 흘러나오고 있으니 어쩐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도 아니고 이미 작년부터 애인이 있던 걸로도 모자라서 그게 같이 사는 형이라니. 그는 물건을 가지러 집에 다녀오겠다는 유토를 쪼르르 따라갔다가 본 적이 있는, 사람 좋아 보이는, 그러나 피로에 찌들어있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서 뭐가 문젠데. 그 형이랑 싸웠어?"


유토는 너무 빠르게 침착을 되찾은 제 친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갤 저었다. 싸운 건 아니지, 그렇지. 그리고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가 주먹을 꼭 쥐고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게 뭐가 주절주절까지 이야기할 일인가 싶지만 '형이 나랑 섹스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라는 직구가 차마 나오지 않아서 슬금슬금 돌려말하고 있는 거다. 물론 흥미진진한 얼굴의 강형구는 유토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지금 자랑하고 있는 거야?' 소리만 몇 번이나 반복했기 때문에, 결국 그는 시선을 피하며 머쓱한 얼굴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아! 그런 말이었구나!"


그제야 손뼉을 탁 친 형구가 고갤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어야지. 그리곤 3초도 지나지 않아 말을 잇는다.


"그냥 유토 네가 덮치면 안 돼!?"
"헉..."
"먼저 달려드는데 뭐 어떻게 하겠어. 그 형도 받아들이겠지."



한번 해봐. 태연한 얼굴로 말하며 웃는 형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토가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왠지 형구 말 들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고민이나 하고 있으니 즐거워 죽겠단 얼굴이 으헤헤 웃으며 어깨를 톡 친다.



"해보고 알려줘."
"뭘 알려줘 그런 걸."
"궁금하단 말이야."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조언인지, 아니면 흥미 본위의 가벼운 구경거리인지. 알 수 없지만 유토는 왠지 그런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그의 마음이 길을 잃고 방황하다 못해 조급해지기 시작한 탓이다.



**



늦은 밤, 불을 끈 방 안은 어두웠다. 회택은 문이 열리자마자 보고 있던 휴대폰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형, 자요?"
"아직 안 잤어. 무슨 일이야?"



방이나 작업실엔 어지간하면 안 들어오는 애가 갑자기. 안 그래도 요즘 태도가 좀 이상하긴 했다. 구체적으로 어떻다 딱 찍어서 말하기는 어려운데, 어쩐지 좀 시들시들한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다 싶어서 쳐다보고 있으면 또 평소랑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유토는 조용히 다가와 침대에 누운 회택의 팔을 꽉 쥐고, 순식간에 몸 위에 올라탔다. 두 눈을 크게 뜬 회택이 당황한 얼굴로 제 배 위에 앉은 유토를 바라보고, 그제야 그동안의 이상한 태도들이 어디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요즘들어 애가 미묘하게 들러붙을 때마다 일찌감치 선을 긋고 즉시즉시 떼어놓곤 했는데, 그게 원인이었던 거다. 아니아니... 당연하잖아.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야... 왜, 왜 그래 갑자기."
"......"
"형한테 뭐 화난 거 있어?"
"...형은 화나면 이렇게 해요?"
"......"



이번엔 회택이 입을 꾹 다물었다. 환장하겠네, 정말. 이걸 어떻게 구슬려서 밀어내야해. 마른침만 삼키며 머리를 굴리고 있으니, 이번엔 입고 있던 후드티를 훌렁 벗어 침대 밑으로 툭 내던진다. 그제야 지금 이 상황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남자가 후드티 밑의 흰 셔츠에 다가가려던 팔을 꽉 쥔다. 강한 힘으로 잡자 유토의 몸이 우뚝 멈췄다.



"유토야. 이러지 말고 형이랑 이야기 먼저 할까?"
"싫어요."


그럼 또 밀어낼 거잖아. 회택에게 잡힌 손을 툭 쳐내지만, 떨어지자마자 다시 팔을 붙드는 손은 아까보다 힘이 훨씬 세졌다. 회택이 울상을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걸 어째.



"야아... 형 진짜 화낸다."
"제가 무슨 잘못했어요?"
"어?"
"왜 화를 내요?"
"뭐?"
"우리 사귀는 거 맞아요?"
"......"



그냥 밀어내지 말고 한 번 대화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냥 그렇게 철벽수비나 하면 시간이 알아서 지나갈 줄 알았는데. 회택이 말이 없어도 유토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아니면 그냥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에요?"
"......"
"......"
"......"
"...진짜 싫어."


너무 미워. 툭 내뱉은 유토가 회택의 손을 힘껏 털어내고 그대로 내려가 순식간에 방을 벗어났다. 아.... 긴 한숨을 내쉰 남자는 즉시 따라나가 어깨를 붙잡지만 이미 유토의 얼굴은 분노나 실망보다 온 피로를 덕지덕지 붙여둔 것처럼 그저 지쳐 보이기만 했다. 회택은 다시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꾹 삼키며 자꾸 도망치려는 시선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형이 미안해... 유토가 뭘 잘못했다는게 아니라... 화 많이 났어?"
"화 안 났어요. 저 잘게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요."
"야..."
"피곤해요."
".....알겠어. 내일 이야기하자."



아....진짜. 문이 닫히고, 회택은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밤새 잠도 못 자고 어떻게 해야 유토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자신의 생각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따위를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애석하게도 그 '내일'이 되고 아침부터 퀭한 얼굴로 방을 나서도 이미 유토는 집에서 나선 후다. 새벽같이 나가버린 거다. 설마 피할 거라곤 생각도 못해서, 또 자신의 머리나 퉁탕퉁탕 때리던 회택이 온종일 다리를 달달 떨며 안절부절 못하고 학교에서도 정신없이 실수만 연발하며 지내다가 유토의 하교시간에 맞춰 거실에 쪼그려 앉아 현관만 바라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유토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회택을 한 번 쳐다봤다가 시선을 피하며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꽉 닫힌 문에 노크를 했더니 담담한 얼굴이 고갤 내밀었다.


"형이랑 이야기 좀 할까?"
"저 피곤해서 일찍 자려구요."
"...지금 형 피하는 거야?"
"내일은 이야기할게요."
"......"


유토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또 어쩔 수 없이 고갤 끄덕이고 만다. 차라리 형이 밉다고 외면했으면 그대로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앉아 억지로 이야기를 시켰을 텐데. 오늘도 한숨뿐인거다. 그래서, 이번의 '내일'에 계획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유토는 아무래도 어느 부분을 조금씩 포기한 것 같았다. 회택이 잔뜩 준비한 이야기들을 꺼내기도 전에 담담한 얼굴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거다. 화가 난 거냐고 물어봐도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고갤 젓고, 언제나처럼 웃으며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했지만 그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걸 회택은 알고 있다.



**



그렇게 불안한 관계는 쭉 이어지고 있었다. 유토는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생활을 했고, 그러면서도 가끔 서러워지면 이전의 회택이 그랬듯이(그건 고의가 아니었지만) 시간을 엇갈려 얼굴이 마주치지 않도록 해버리는 거다. 아예 새벽같이 학교로 가버리거나 하교 시간을 맘대로 바꿔 일찌감치 문을 닫고 들어가 침대에 누워버리거나. 그럼 회택은 꽉 닫힌 문앞에 서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거나, 가끔은 조용히 들어가 자고 있는 얼굴만 가만히 바라보다 나오는 거다.

외로워 죽을 것 같아.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거잖아, 이건.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늘어졌다. 하필 예정된 공연까지 다음 달로 미뤄지는 바람에 미친 듯이 달리던 생활에 뜻밖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더 우울했다. 일에 매달리기라도 하면 잠깐이나마 잊을 수라도 있었을 텐데. 텅 빈 머리는 그저 유토에 대한 걱정만으로 가득해서 안절부절못하며 괜히 애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애교나 한 번 더 피워보는 거다. 유토는 그때마다 그냥 웃으며 가볍게 끌어안고 등을 두드렸다. 볼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술은 마지못해 하는 건지 뭔지, 스쳐도 이렇게까지 아쉽진 않겠다 싶을 정도였고. 역시 이번 주말에 붙잡아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아아악 비명을 지른 회택이 머리를 헝클었다.

토요일은 유토의 시합 날이었다. 회택의 다음 달로 밀린 공연이 있던 원래의 날짜 말이다. 두 사람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 따뜻한 국으로 아침을 먹고, 유토는 거실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들었다.



"오늘도 연습하러 가?"


회택이 묻자 잠시 입술을 달싹이며 머뭇거리던 얼굴은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네... 근데 조금 늦게 와요. 다녀오겠습니다."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고 하려고 했는데. 늦게 온다는 말에 의기소침해진 남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우울해졌어. 어떡해. 작업이고 뭐고 모든 걸 미룬 남자는 그대로 거실에 누워 멍하니 바닥을 바라본다. 이러다가 진짜 헤어지면 어떡해. 형이 지긋지긋하다고 도망쳐버리면 어떡해. 이미 그러고 싶은 건데 집 때문에 못 나가고 있는 거면 어떡해. 한 번 시작된 부정적인 생각들은 끝도 없이 단계를 넘고 넘고 넘어 감당 못할 상상까지 닿아버리고 만다. 안 돼... 팔에 고갤 처박은 회택이 잠시 우울의 시간을 보내다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불안해서 유토가 보고 싶어. 연습하는 거라도 몰래 보고 오자.

엉망인 머리 위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느릿느릿 유토의 학교를 향해 걷다 보니 시간이 애매했다. 뭐 간식거리라도 사다줄까. 그제야 갑자기 이전에 자신이 펑크를 내버렸던 초밥집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그때 너무 바빠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있었지. 함께 저녁 먹자니까 신나서 초밥을 외치던 목소리가 아직까지 생생했다. 뭘 떠올려도 미안한 감정만 무럭무럭 자라난다. 회택은 학교와 반대편에 있는 일식집에 가서 연어초밥 두 팩을 테이크아웃하고, 다시 또 느릿느릿 학교를 향한다. 이미 연습이 한창인지 멀리서도 남자애들의 함성 소리나 삑삑 호루라기 소리가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려댔다. 회택은 운동장 끄트머리의 스탠드에 앉아 공을 차고 뛰어다니는 남자애들 무리 중 유토를 찾기 시작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연습이 아닌 것 같은데. 멍하니 고갤 움직이며 바라보고 있으니 시야에 다른 학교 차량과 점수판 따위가 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회택은 오늘이 유토의 시합날이었음을 떠올려냈다.


"아... 진짜...."


멍청하게, 공연이 밀리는 바람에 잊고 있었어. 그는 이제 몇 번째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왜 바보처럼 말을 안해가지고. 어쩐지 아침에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나가더라. 결국 남은 건 자신이 이것저것 펑크낸 잔해들뿐이다. 이러니까 애가 불안해하지. 결국, 회택은 스탠드에 완전히 자릴 잡고 앉아 조금 전에 시작한 전반전과 후반전까지의 긴 시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애한테 건네주려고 샀던 음식은 회택의 식사가 됐다. 느릿느릿 냠냠 먹다 보니 어느새 경기가 끝나버린다. 유토는 자신의 학교가 이겼어도 그닥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정말로 기다렸다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마음 풀릴 때까지 이야기해야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던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물끄러미 유토를 바라본다. 상대 학교와 인사를 하고, 뒷정리를 하고, 그 다음엔 아마 뒤풀이가 있는 건지 비슷한 남자애들과 옹기종기 모여 운동장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애 가는 것만 보고 집에 가야겠다 싶었는데, 문득 스탠드 쪽으로 고갤 돌린 유토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만다. 동시에 걸음이 우뚝 멈췄고, 옆에서 조잘조잘 이야기하던 형구가 유토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잠깐 이야기를 하나 싶더니 금세 회택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가볍게 뛰던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스탠드까지 닿지 못한 채로 완전히 멈추고 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갤 숙인다. 그제야 스탠드에서 내려온 회택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는 유토의 손을 잡아당겼다.


"왜 울어. 미안해."
"......"
"유토야..."


진짜 미안해. 글케 우니까 형 가슴이 찢어지네. 꽉 끌어안은 회택이 어깨에 얼굴을 부비다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스윽 닦아내고, 고갤 기울이며 시선을 맞춘다.


"미안해. 형이 너무했지."
"......"


금방 진정되나 싶다가도 회택이 한마디만 하면 다시 눈물이 나온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 서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역시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회택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끅끅대며 한참을 울다가 완전히 지쳐서 고갤 든다. 회택은 유토의 손을 꽉 쥐고 운동장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많이 덥지. 집에 가서 씻고 같이 밥 먹자. 형 오늘 유토한테 할 말 엄청 많은데."
"....네."
"형이 유토 엄청 사랑해. 알지?"
"......"


푹 숙였던 얼굴이 그제야 슬쩍 들려 회택을 노려본다. 그리곤 시선을 피하며 고갤 끄덕이고 만다. 회택이 보채듯 잡은 손을 흔드니 그제야 '저두요' 하고 조금 웃는다. 이제 완전히 안심한 회택이 겨우 웃음을 터뜨리며 걸음을 조금 더 빨리 하기 시작했다.


"형 상처받았잖아. 유토가 우리 사귀는 거 맞냐고 물어봐서. 에이... 일케 좋아하는데. 그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주룩 흘러나오고, 떨리는 입술이 '죄송해요' 하곤 울어버리고 만다. 회택은 당황한 얼굴로 매달리며, 몇 초 전의 자신을 후려패고 싶어진다.


"야아! 미안해. 장난이야! 장난이었어 유토야!"


아이구 진짜. 망할놈의 입. 걸음을 멈춘 회택이 등을 두드리며 달래고 있으니 입술만 떨며 울던 얼굴이 다시 어깨에 얼굴을 처박고, 회택의 팔을 꽉 쥔다. 회택은 다시 진정한 유토의 손을 잡고 집을 향했고, 배고프다는 소리에 저녁 메뉴를 고민했고, 빈 곽을 가리키며 그걸 먹겠다는 말에 그대로 돌아서서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



너무 일찍 잠들었던 탓인지 어스름한 새벽에 눈을 뜨고, 작업실에 틀어박혀있다가 사람 움직이는 소리가 나길래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왔다. 젖은 머리를 털던 유토가 화들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직 안 잤어요?"
"쫌전에 일어났어. 걱정하지 마."


시계를 보니 벌써 학교에 갈 시간이다. 수건을 빨래통에 던진 유토가 교복 단추를 마저 채우고,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회택의 손을 잡아당기는데 그 표정이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형."
"왜... 왜 그래 갑자기. 무섭게."


우리 어제 화해한 거 아니었나~? 하하 웃음을 터뜨린 회택의 귀로 잔뜩 풀죽은 유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죄송해요. 사귀는 사이 맞냐고... 해서."
"엥? 야... 어제 그거 그냥 장난으로 했던 말이야. 진짜 신경쓰지 마. 응?"
"...알겠어요."


그래도 시무룩한 얼굴은 계속 마음을 쓰고 있을 게 뻔했다. 그리고 수많은 다른 것들도. 회택이 슬쩍 시선을 든 유토에게 손짓했다. 얌전한 얼굴은 시키는 대로 가까이 다가와 가만히 얼굴을 바라본다. 회택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얼굴을 꽉 붙들고 가볍게 입맞췄다.


"유토야."
"네."
"이 다음은 유토가 어른이 되면 하자."
"....전 이미 어른이에요."


고작 몇 달이 더 지난다고 해서 뭔가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조금 더 시무룩해진 얼굴이 천천히 시선을 떨군다. 회택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볼을 조물거렸다.


"그래... 근데 형이 아직 어른이 안 됐나봐."
"......"
"맨날 유토 괴롭히고 울리고. 그치."
"....그런 거 아닌데."


소심한 목소리가 말하자마자 회택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두 팔을 멋대로 유토의 어깨에 걸친다.


"형 꽉 안아주라. 응응?"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여전히 웃으며 눈을 마주본다. 유토는 말없이 마른 몸을 꽉 끌어안았다. 바보같아. 어떤 부분이 바보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든 게.


"...저 그럼 학교 다녀올게요."
"응, 참. 잠깐만."


신발을 신던 유토가 고갤 들었다. 가만히 선 회택이 고갤 갸웃 움직인다.


"근데 어제 그 친구 이름 뭐야?"

"누구요?"
"네 손 잡은 애."
"......"


눈을 몇 번 깜빡거린 유토가 '형구요' 대답했다. 아~ 형구. 친구 이름을 따라서 한 번 말해본 회택이 하하 웃는다.


"걔 왜 손 잡아?"
"......"


뭐야, 바보 같네. 발을 꾹 누르자 신발 속에 완전히 들어간다.


"그러지 마. 형 질투했단 말이야."


이제 완전히 샐쭉해진 얼굴은 회택을 째릿 노려보고 천천히 고갤 끄덕인다.


"알겠어요. 저 그럼 진짜로 갈게요."
"잠깐만."
"...저 지각하는데."


또 뭐. 회택은 다급한 얼굴로 손을 잡아당겼다.


"너 집에 왔는데 형 자고 있으면 깨워줘. 보고싶어."
"...그건 형 피곤하니까."
"그럼 형 맨날 자고 있으면 영원히 얼굴 안 볼 거야?"
"그건 아니지만...."


금새 시무룩한 얼굴이 고갤 숙이고, 회택이 잡은 손을 흔들흔들 움직였다.


"형이 피곤해 하면 방금 전처럼 안아주면 되잖아. 형은 그게 더 좋아. 그래서 같이 사는 거야."
"....알겠습니다."


유토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그리고 이젠 정말로, 학교에 가야 하는데. 회택은 좀처럼 잡은 손을 놔주지 않는다. 저 학교 가야 하는데... 조용히 말하며 손을 빼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그렇게 바보같은 다툼을 몇 분이나 끊임없이 하다가, 정말로 지각 직전에야 유토는 회택을 옆에 달고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12시간 후, 그 남자는 현관문을 열고 모처럼 큰소리로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며 집안에 들어간다. 그럼 거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회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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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님이 돌려돌려연성판에 후유 걸리셔서 써주신 후유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후윹 팬픽 연성 제 첫번째 기념비적인 글이기 때문에 저는 매일 수능공부 하듯 복습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후윹이 펜페스 메이저가 된다면 이 글이 성지가 될것이에요 꼭 성지순례 찍고 가세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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