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받은 글/대메이저 후윹

mell님 / 몽글몽글






신우 후윹 연성교환차 주신 글

몽글몽글




mell













으.. 숨이 안 쉬어져....




얼굴을 찡그리며 숨을 들이쉬다가 켁켁 기침을 하던 회택의 눈앞에, 제 배 위에 엎드려 곤히 잠든 유토가 들어온다. 언제 또 여기에 올라와서 자고 있어. 한여름엔 나란히 자는 것도 싫다고 혼자 얇은 담요 하나 들고 방이나 거실이나 가장 시원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더니만. 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니 기온이 제법 떨어지는 새벽만 되면 이렇게 꼬물꼬물 다가와 옆에 붙어서 자고 있거나 멋대로 다리를 베고 자고 있거나 배 위에 온몸을 던져 잘도 자고 있다.



"유토야..."




젖살이 통통한 여섯 살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금세 반응해 슬그머니 눈을 떴다가, 느리게 고갤 들었다가,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이곤 다시 얼굴을 회택의 배에 처박는다. 어제 제법 일찍 잤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실까. 평소같으면 그런 김에 조금 더 자고 말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오늘은 후배의 결혼식이 있다. 멍하니 시계를 바라본 회택이 유토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유토, 우서기 삼촌 알지?"
"....네."



낯익은 이름에 다시 고갤 든 유토가 꾸물꾸물 일어나 바닥에 드러눕는다.



"오늘 아빠랑 우석이 삼촌 결혼식 가야해."
"결혼식이 몬데요."
"응 결혼식이 뭐냐면... 가족이 되는 거야."
"가족?"



응. 가족. 몸을 일으킨 회택이 고갤 끄덕였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유토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한 번 콕 가리키고, 그 다음엔 회택의 옆구리도 콕 찌른다. 회택이 다시 한 번 고갤 끄덕였다.



"우리도 가족."
"맞아. 유토랑 아빠도 결혼해서 가족이 된 거야."
"...기억 안 나는데."
"아 진짜?"



왜 기억이 안 나~ 실망이야... 아침부터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혼자 토라진 척을 하던 회택이 다시 한 번 시곌 보곤 유토의 두 팔을 잡아당겼다.



"그럼 기억나게 같이 가서 보고 올까?"



잠깐 망설이던 유토가 고갤 끄덕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빠랑 언제 결혼식을 했지? 진짜로 기억 안 나는데. 유치원 들어가기 전에 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도 6살 인생의 머릿속엔 결혼식이라는 단어가 제대로 남아있질 않는 거다. 회택은 즐거운 얼굴로 후후거리며 칫솔을 두 개 들고 나와 하나를 유토에게 내밀었다. 치카하자!



"오늘 옷 제일 멋있는 거 입어야 해. 알겠지?"
"네."
"형구 삼촌이랑 다른 삼촌들도 온다고 했으니까 지면 안 돼."
"알겠어요."



모 입지. 노란 칫솔을 입에 물고 멍하니 생각하던 얼굴은 얼마 전에 아빠가 새로 사온 블랙진과 까만 곰돌이 티를 떠올리곤 그걸 입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지난달에 산 까만 운동화도. 양말은... 티셔츠랑 세트인 곰돌이 양말... 유토가 느긋하게 양치하는 사이 혼자 바쁜 회택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전화를 하다가 엊그제 세탁소에서 찾아온 와이셔츠를 걸쳤다. 아 넥타인 뭘로 하지. 유토 옷이랑 같은 색으로 맞출까 싶어 방문 밖으로 고갤 배꼼 내밀었더니 그곳에 서 있는 건 온통 블랙으로 몸을 휘감은 어둠의 꼬마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냥 어제 퇴근 후 풀어 걸어둔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




옌안은 한국행 비행기를 놓쳤다고 하고, 진호와 홍석은 근처에 볼일이 있어 일찌감치 식장에 도착했다고 하고, 형구는 지금 막 택시에서 내렸다더니 주차장 앞에 멈춰있는 회택의 차를 바로 알아보고 다가와 창문을 콩콩 두드린다. 그는 조수석에 앉은 유토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흔들었다. 형구는 유토가 제일 좋아하는 삼촌(이라고 해봐야 회택의 친구들이었지만) 중 하나였다. 이유는 잘생겼는데 웃는 게 멋있으니까.



"유토 왔어!?"
"야 오늘 차 왜 이렇게 밀리냐."
"그러게요. 결혼식 꽉 차있다고 하더니. 유토 제가 데리고 들어갈게요."



형구가 조수석 문을 열고, 유토는 혼자 폴짝 뛰어내리지만 바닥에 닿아있는 건 고작 3초 정도다. 곧장 애를 안아든 형구가 환하게 웃으며 이마를 콩 부딪친다.



"유토도 우석이 삼촌 결혼식 보려고?"
"네."
"결혼식이 뭔지 알아?"
"가족 되는 거."



오... 어떻게 알았대. 대단한데? 혼자 감탄하며 유토를 바라보고 있으니 태연한 얼굴이 그런다.



"옛날에 아빠랑 결혼해서 알아요."
"엥? 유토 아빠랑 결혼했어?"
"네."
"언제?"
"옛날에."
"...그거 누가 말해줬어?"
"아빠가."



그제야 활짝 열린 창문 위로 고갤 내밀 형구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혐오를 가득가득 담은 눈으로 회택을 노려본다.



"형 대체 애한테 뭔 소리를 하고 사는 거예요?"
"에이 그냥 하는 말이지."



장난인데... 그는 순식간에 매립 쓰레기 따위가 된 기분을 만끽하지만, 형구는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유토를 안은 채로 몸을 휙 돌린다. 주차나 하고 와요. 뒤에서 야 형구야~~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유토랑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며 식장으로 휘리릭 사라진다.



홍석은 반쯤 죽은 채 바깥의 대기석에 앉아있었다. 아까 전화할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더니 왜 갑자기 시체가 됐어. 형구가 유토를 바닥에 내려놓자, 꼬마는 낯익은 삼촌을 향해 쪼르르 달려간다. 그제야 퀭한 얼굴이 고갤 들고, 유토와 손뼉을 탁탁탁 치며 반가워는 하는데 얼굴은 여전히 좀비상태다.



"형, 어제 술 먹었어요? 얼굴이 왜 이래."
"아니야. 어제 저녁부터 밥을 못 먹어가지고..."
"왜. 바빴어요?"
"먹을 타이밍을 놓쳤는데 진호 형이 오늘 뷔페니까 그냥 먹지 말래서."



어휴.... 형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에 뭔 미련퉁이들만 잔뜩이야. '바보예요!?' 하니 '나도 후회하고 있으니까 조용히 해라' 그런다. 음료수를 들고 돌아온 진호가 하나를 홍석에게 내밀고, 아마도 제가 먹으려고 샀을 다른 음료수는 유토에게 내민다.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회택이 그네들을 발견하고 쪼르르 다가왔다.



"유토야 우석이 삼촌 보러 가자. 오늘 엄청 멋있을 거야."

"나두 가야징."



주섬주섬 봉투를 꺼낸 형구가 고갤 끄덕이는 유토의 손을 잡고 홍석 쪽을 돌아봤다. 그는 그저 손을 뻗어 휘휘 내저었을 뿐이다. 이미 오자마자 얼굴을 봤던데다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캔 음료수를 딸 힘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우석은 제 대학 동기와 선배들을 발견하곤 웃는 얼굴로 고갤 꾸벅 숙였다.



"형, 와줘서 고마워요."
"나는 안 보이냐?"
"그래 와줘서 고맙다 고마워."



유토는 우석과 형구가 투닥거리는 걸 즐거운 얼굴로 바라보고, 새하얀 장갑을 낀 손과 악수도 한다. 그 감촉이 신기해서 몇 번 꼬물꼬물 만져보고 있으니, 휙 돌아선 형구가 다시 죽어가는 홍석을 향해 총총 걸어간다. 형구의 어깨 위에 턱을 대고 있던 얼굴은 자신들의 바로 뒤를 따라오는 회택을 보며 웃고, 장난을 치듯 자신에게 내미는 아빠의 손가락을 앙 깨물다가 이번엔 홍석 삼촌의 옆에 풀썩 착석한다. 홍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갤 번쩍 들었다.



"이제 밥 먹어!?"
"식은 보고 가야지."



회택이 고갤 저었다. 홍석은 대절망한 얼굴로 아무렇게나 쓰러졌다. 그걸 보던 유토가 키키 웃음을 터뜨린다.



"나 진짜 배고파 죽겠단 말이야. 토할 것 같아요. 유토 토해본 적 있어!?"
"네."
"삼촌 지금 토할 것 같아. 힘들겠지!?"
"......"



별로. 유토의 눈동자가 홍석의 반대편으로 슬쩍 돌아간다. 헉... 유토가 날 버렸어. 여전히 절망에 빠진 남자는 흑흑 우는 소릴 내지만, 유토는 슬금슬금 옆으로 피하다가 결국 회택에게 팔을 뻗어 안아달라 보채고 만다. 곤란한 얼굴로 뺨을 긁던 형구가 시계를 한 번 보고, 죽어가는 홍석도 한 번 본다.



"유토 배고파? 밥 먹으러 갈까?"
"조금."
"우석이 삼촌 결혼식은 어떡해? 누구랑 결혼하는지 볼 수 있는데."



형구의 밥 먹잔 소리에 솔깃했던 얼굴이, 우석 삼촌 배우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단 소리에 또 헉 하며 고갤 끄덕인다. 회택은 갈대 같은 아들을 그저 웃으며 바라보다가 꽉 끌어안고 볼에 얼굴을 부빈다. 아이고, 귀여워 죽겠다. 이미 분위기가 식을 보고 밥을 먹는 쪽으로 흐르고 있으니, 가만히 서 있던 진호가 그런다.



"유토야. 뷔페 늦게 가면 고기 없는데."
"......"



유토가 입을 헙 다물었다. 죽어가던 홍석도 즉시 숟가락을 얹는다.



"아이스크림이랑 브라우니도 다 떨어져서 못 먹어!"

"......"



물론 그런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제야 다시 망설이던 마음이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회택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그저 웃으며 고갤 꿀렁꿀렁 흔드는 장난이나 칠 뿐이다. 밥 먹어도 상관없고~ 식 보고 가도 괜찮고~ 도움이 안 되는 아빠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유토가 진호를 힐끗 쳐다봤다.



"...밥 먹을래요."
"예쓰!"



오늘 처음으로 환하게 웃은 홍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결국 우르르 식당 쪽으로 몰려가고 있으니 뒤를 한 번 돌아본 형구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우서기 삼촌이 알면 통곡을 하겠네. 일찌감치 내려온 탓인지 밥을 먹고 있는 건 고작 세 팀 정도로, 가운데의 큰 테이블에 자릴 잡은 남자들이 부랴부랴 음식을 떠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테이블로 돌아온 건 음식이 쌓인 그릇 두 갤 든 홍석이었다. 그 다음은 깔끔하게 담은 형구, 고기 타령이나 하더니 디저트와 과일부터 챙겨온 진호, 그리고 제일 마지막이 회택과 유토다. 유토의 키가 작아 보이질 않으니 회택이 한 팔로 애를 안고, 그릇은 유토가 들고, 정말 힘들게도 음식을 퍼오는 거다. 홍석은 진호가 너무 많다고 내팽개친 디저트 하나를 슬그머니 유토의 접시에 내려놓다가 눈이 딱 마주치고, 헤헤 웃음을 터뜨렸다. 그 다음은 회택에게 등짝을 맞는다.



"근데 되게 신기하다."



냠냠 잘도 먹던 진호가 고갤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진호를 향하고, 그는 입에 든 걸 꿀꺽 삼키곤 그런다.



"우석이가 두 번째로 갈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그니까... 우리 진호 형도 아직인데."



회택이 괜한 소릴 하며 방금 전의 홍석처럼 등짝을 두들겨 맞는다. 진호의 손은 제법 매워서, 끄아악 소릴 내는 아빠를 보며 유토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그 놀림 탓인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던 진호의 옆에 빈병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고, 그는 모두의 식사가 끝날 즈음이 되자 완전히 맛탱이가 가서 실실 웃으며 유토의 접시에 초콜릿을 하나씩 올려놓고 있었다. 삼촌은 초코 못 먹거든. 그걸 다시 다른 인간들의 접시에 던지는 건 회택이다. 하핫하 웃으며 진호 형 자꾸 그러면 죽일 거예요~ 하니까 움찔 하던 남자는 그것들을 다시 주워 형구와 홍석의 접시에 옮기기 시작한다. 그 정도만 먹었더라도 제 발로 걸어서 식장을 나설 수 있었을 텐데. 그것들을 가만히 구경하던 유토가 회택의 팔을 콕 찔렀다.



"유토 왜?"
"결혼식 뭔지 안 알려줬잖아요."
"아 맞다!"



깜빡했다. 아.... 멍충하게. 그제야 아쉬운 얼굴을 하지만 이미 식은 진작 끝나 식사를 하는 사람이 한가득이다. 회택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갤 저었다.



"아~ 아빠가 깜빡해버렸어. 오늘은 어쩔 수 없으니까 다음에 진호 삼촌 결혼식 가자. 응?"
"진호 삼촌도 결혼해요?"



유토가 화들짝 놀라며 고갤 들었고, 회택은 고갤 저었다.



"그건 아닌데 아마 다음이 맞기는 할 거야."



아마도. 회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구가 웃음을 터뜨렸다. 즉각 진호의 째림이 날아오고, 그는 분노한 얼굴로 맥주병을 쾅 내리쳤다가, 사이다가 자작하게 남은 회택의 잔에 술을 붓기 시작했다. 이걸 운전 따위로 거절해봐야 주정뱅이의 마시란 투정밖에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이미 알고 있기에, 그는 그저 고마워요 하며 웃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잔을 형구 쪽으로 스으윽 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둘이 아니었다. 운전석에 앉은 회택과, 조수석에 앉은 유토, 그리고 뒷좌석에 누워 중얼중얼 잠꼬대를 하는 진호까지. 형구와 홍석은 오늘 낮에 면접 스터디가 있다고 그대로 돌아가버렸기에. 회택은 꽤 멀리 있는 진호의 집까지 가려다가, 그냥 포기하고 자신의 집으로 차를 돌린다. 데리고 돌아가 대충 버려두면 알아서 돌아가겠거니. 유토는 안전벨트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종종 뒤를 쳐다봤다. 차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리는 진호 삼촌은 무슨 말을 하는 것도 같고, 무슨 노래를 부르는 것도 같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회택이 낑낑대며 진호를 데리고 올라와 거실에 내던지고, 잠도 부족한데 쓸데없이 배가 불러 꾸벅꾸벅 조는 유토와 함께 그대로 드러누워 수면 부족분을 채우고 만다.




**




눈을 뜨니 이미 주말의 반이 지나간 상태다. 부스스 일어난 유토가 옆에 누운 진호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가, 몇 시간 전에 같이 들어왔던 그 취객임을 떠올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조금 전에 일어났던 회택은 거의 비어있는 냉장고를 발굴하는 중이다. 지난주에 아이스크림을 사뒀던 것 같은데... 까만 봉지들을 열어보다가 인기척에 뒤를 도니 유토가 느릿느릿 이쪽으로 걸어온다.



"유토 일어났어? 아이스크림 먹을래?"
"먹을래요."



쪼르르 달려온 꼬마가 뒤꿈치를 들고 양손을 냉동실 위에 턱 올린다. 이상하네, 분명 샀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아도 아이스크림은 나오지 않고 예전에 사뒀다가 처박아둔 마스카포네 치즈 따위만 굴러나온다. 대체 이런 건 언제 샀는데. 그러다가 곧 엊그제 놀러온 여창구와 김효종의 얼굴을 떠올린다. 맞다, 이 자식들이 다 털어먹었지. 그는 상심한 얼굴로 냉장고를 닫고, 유토의 어깨를 꽉 쥐었다.



"유토야, 생각해보니까 아이스크림 창구 삼촌이랑 효종 삼촌이 다 먹었네."
"아 맞다. 나도 먹었는데."
"근데 이거 크림치즈 있으니까 우리 티라미수 만들어 먹을까?"



유토가 고갤 끄덕거렸다. 티라미수 좋아! 그럼 치즈는 있고~ 생크림이랑 쿠키만 사오면 되겠네. 방에서 지갑을 들고 나온 회택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 생크림 사올 테니까 진호 삼촌이랑 만화 보고 있어. 지금 학교괴담할 시간이다."
"알겠어요."



회택이 시키는 대로 진호의 옆에 앉아 리모컨을 만진 유토가 무서운 고양이 같은 게 가득한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신발을 신는 회택을 향해 손을 흔든다. 아빠 갔다올게~ 이따가 봐~ 잠깐 앞의 마트에 다녀오는 데에도 인사를 십 분씩이나 하며 지지부진 끌다가 결국 아쉬운 얼굴로 현관을 나선다. 유토는 다시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까만 고양이 뒤로 시꺼먼 그림자가 슬금슬금 올라와 거대한 괴물이 된다. 그리고 새빨간 입을 쩌억 벌리며 화면을 향해 날아온다. 헉, 움찔 놀란 유토가 미동도 않는 진호의 손을 꽉 쥐었다. 평소엔 잘도 보던 건데 하필 오늘 엄청나게 무서워가지고. 그걸로 끝이 아닌지 화면 속의 아이들이 교실에 갇혀 꺄아악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유토가 진호의 손을 흔들흔들 움직였지만 기절한 취객은 깨어나지 않는다.



어떡해....



훅 커진 눈은 화면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손만 더듬더듬 움직여 저 멀리에 있는 담요를 스으윽 끌고 와 그걸 온몸에 두른 뒤 몸을 웅크리지만 그래도 무서운 거다. 유토는 다시 한 번 진호의 팔다리를 잡고 흔들며 몇 번이나 진호 삼촌!을 외치지만 애석하게도 술에게 의식을 잃은 남자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옆에서 그러고 있으니 이제 더 무서운 거다. 울상이 된 얼굴은 그놈의 귀신타임이 지나갈 때까지 진호의 팔을 꼬집고, 다리를 때리다가 결국 공포고 나발이고 짜증이 훅 올라와 삐진 얼굴로 진호의 손등이나 발을 찰싹찰싹 때리고 만다.



"하아..."



짜증나. 한숨을 폭 내쉰 유토가 망토처럼 두르고 있던 담요를 휙 내던졌다. 화나서 이제 안 무서워졌어. 그러자마자 현관이 벌컥 열리고 커다란 비닐봉지를 든 회택이 돌아온다.



"유또 진호 삼촌이랑 잘 있었어?"
"...........네..."



짜증난다고 말해 뭐해. 그보다 지금은 비닐봉지 안에 든 것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회택은 생크림과 핑거쿠키, 애가 먹을 거니 커피 대신 넣을 메이플 시럽 따위를 주섬주섬 꺼내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았다. 머지않아 그 옆에 투명한 플라스틱 통 세 개랑 마스카포네 치즈, 초코가루도. 쿠키를 주섬주섬 꺼내 유토 쪽으로 쭈욱 민 회택이 치즈와 생크림을 제 쪽으로 가져간다.



"봐봐. 아빠가 크림을 만들 거니까 유토가 빵을 만들어줘야해.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릇에다가 쿠키랑 크림을 번갈아가면서 넣을 거야. 쿠키, 크림, 쿠키, 크림, 이렇게."



유토가 고갤 끄덕끄덕 움직였다. 회택은 작은 쿠키들을 그릇에 담고 메이플 시럽을 잔뜩 뿌려 그것들이 촉촉해지는 걸 가만히 바라본다.



"이렇게 눅눅해지면 위에다가 크림을 놓으면 되는 거야. 아빠 빨리 크림 만들어올 테니까 유토도 빵 만들고 있어?"
"네!"



빛나는 눈이 회택에게서 시럽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꼬물꼬물 움직이는 손은 쿠키들을 그릇에 하나하나 옮겨 자작하게 깔기 시작한다. 그 다음엔 조심조심 시럽을 뿌리는 거다. 조절이 안 되는 손은 갑자기 후두둑 쏟아지는 시럽에 당황하기도 하고, 너무 안 나와서 툭툭 쳐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휘핑기로 순식간에 치즈크림을 만든 회택이 커다란 볼을 들고 거실로 나오니, 유토는 얌전히 앉아 완성된 세 그릇을 바라보는 중이다. 회택은 이제 크림이 든 볼을 건네고, 제 쪽으로 시럽을 가져간다.



"이제 유토가 크림 넣어줘. 남은 쿠키는 아빠가 시럽 뿌릴 테니깐."
"오."



유토는 빛나는 눈으로 퐁퐁 솟은 크림을 바라보다가 숟가락으로 듬뿍 뜨고, 그걸 제 입으로 가져간다. 냠 소리를 내며 먹은 얼굴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은 크림을 조심조심 그릇 위에 깔기 시작했다. 유토가 작업을 마치면 회택이 그 위에 과자를 놓고 후다닥 시럽을 뿌리고, 그 다음은 또 유토가 분주히 크림을 올린다. 크림을 묻히고 꺄르르 웃으며 놀고 있어도 옆에 누운 산송장은 당최 일어날 생각이 없다. 커다란 그릇 세 개에 시럽 묻힌 과자와 치즈크림을 가득 채운 후에 초코가루를 솔솔솔 뿌리면 그것은 회택과 유토가 종종 나가 사먹던 그 티라미수와 똑같은 비주얼이 된다.



그릇들이 냉장고에 들어가 먹기 좋은 시간이 될 때까지 유토는 종종 그 앞을 배회했다. 티비를 보다가도 벌떡 일어나 쪼르르 달려가고, 근데 차마 냉장고를 열지는 못하고 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다시 거실로 돌아온다. 빨리 먹고 싶은데... 시원해질 때까진 그럴 수가 없다. 한겨울이었으면 더 빨리 됐을 텐데. 냉동실에 넣어놓자고 말할까? 가만히 고민하고 있으니 어느새 부스스 일어난 진호가 퉁퉁 부어 심란해진 얼굴로 주변을 살피고,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그는 회택이 내민 물을 한 컵 원샷하고 끄으윽 죽는 소릴 냈다.



"집에 해장할 거 없냐?"
"아 뭔... 형 일어났음 집에 좀 가라."



집주인의 구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남자는 그대로 일어나 불편한 정장바지를 휙 벗어던지고 멋대로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 그 안엔 두 사람이 열심히 만든 거대 티라미수 그릇 세 개가. 냉장고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달려와 진호의 다리를 붙든 유토가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그걸 콕 찌른다. 결국 세 남자는 커다란 그릇 세 갤 하나씩 들고 숟가락으로 티라미수를 퍼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는지, 속이 답답한지, 숟가락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커다랗게 뜬 진호가 허겁지겁 그걸 입에 집어넣다가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카카오가루를 내뿜고, 유토는 그걸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크림과 촉촉해진 과자를 듬뿍듬뿍 떠서 냠냠 먹던 유토의 눈에 빨간 손자국이 남은 진호의 팔과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귀신 보면서 엄청 때렸지. 그는 슬그머니 시선을 제 아빠에게로 돌리며 조용히 티라미수나 퍼먹는 것이다.










---------


멜님께 신우 드리는대신 받은 후윹픽

제가 멜님 글중 블루블루라는 애기들 나오는 팬픽같은 후윹 써달라구 리퀘 했었어요!!